[기획연재] 인권과 동네 한 바퀴! 3탄 '성산도서관'
40대 후반 부부와 초6, 중3 아들들의 인권감수성 키우기
성산도서관 외부 돌아보기
인권을 의식하는 삶을 살면서부터 건물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다. 인간 삶에서 건물만큼 안전함과 편안함을 주는 구조물이 또 있을까? 기둥과 지붕이 있고 토지에 정착된 것을 건물이라고 하였다. 그런 건물은 스스로 형태를 갖출 수는 없다. 인간의 손을 거쳐서 인간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건물은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며, 그 안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삶의 흔적들을 남긴다. 이런 흔적들이 모두에게 쉽사리 허용될까? 이번에는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성산도서관'을 의심했다.
오후 6시를 선택한 것은 아들들을 위한 나름의 배려였다. 버스정류장 인권 한 바퀴를 할 때 아들들이 버스정류장을 이용하는 사람들만 있으면 취재를 거부하고 지연시켰다. 사춘기의 두 아들은 부끄러움이 한 몫한 듯, 그리고 엄마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며 어찌나 무안을 주던지 결국 싸우면서 돌아왔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저녁 시간 도서관 건물에 접근하기 좋은 조도인가도 궁금했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주관적인 측정이 될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삶이 개인의 주관적 불편함과 필요성으로부터 시작되어 제도에 정착되는 과정을 생각해본다면 그저 주관적인, 적어도 우리 가족 모두에게 불편함의 강도만이라도 측정해 보고 싶었고 12월 초, 저녁 6시에 도서관에 접근하는 것에는 별 무리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도서관의 주차장이 너무 좁았던 것 같은데, 언제 정비가 된 것인지 주차장도 확장해서 정비되어 있었다. 사실 성산도서관을 찾게 된 것은 주차장 바닥에 대한 개인적인 의구심에서 시작되었었는데,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순간 당황하면서도 감사했다.
두 개의 바닥 모두 내가 인권에 대해 의식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그냥 보기 좋은 바닥, 미관을 고려해서 그에 맞는 콘셉트으로 만든 바닥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뭔가 예쁘기도 하고 어울리기도 하는데 아쉬움이 있다. 한마디로 울퉁불퉁하단 말이다. 근래에 다녀온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관저 앞길 바닥을 보는 순간, 그리고 걷는 순간? 왜 조금 더 세심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쁘기는 하지만 너무 울퉁불퉁해서 걷는 것이 불편했다. 미관은 고려하되 평평함은 맞췄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그전 성산도서관 주차장 바닥은 조금은 더 나았지만, 그 역시 적당한 불편함이 있었다. 내가 글을 쓰면서도 '적당한'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에서 뭔가 타협의 의지가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음을 느낀다. 부끄럽지만, 이게 내 모습이다. 불편함과 변화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적당히 넘어갈 수 있어서 이해할 수 있는 범주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미리 지어진 건물과 구조물들을 어떻게 할 수 없어 하고 그에 굴복하고 만다. 반면 나는 도로의 울퉁불퉁함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는 장애인들이나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소수자에게는 방관자의 모습인 것이다. 한없이 부끄럽다.
실내와 연결되는 외부계단의 모습이다. 계단에 도착하자마자 두 아들이 줄자를 들이민다. 한마디로 “150, 넓어” 이렇게 정리했다. 이 부분에서 두 아들과 약간의 논쟁이 있었다. 계단인데 조명이 없다는 나의 의견에 저녁 시간은 외부 계단을 출입하면 안 된다는 아들들의 의견 충돌, 맞다. 일정 시간에는 외부계단 출입제한이라는 공지가 붙여져 있다. 그러나 계단이 있을 때 사용에 대한 염두가 있을 것이고 어떠한 경우라도 출입제한 시간에는 사용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혹시 모를 사고에 출입제한이 공지되어 있으므로 모든 책임에서 피해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제기만을 하고자 한다. 논쟁하는 시간은 아니니 말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 제안하자면 요즘은 태양광을 이용하는 계단식 조명도 있고, 도로 바닥에 쓰이는 눈에 띄는 형광색 표시의 방법도 있다는 짧은 나의 의견을 더한다. 그리고 아들이 계단에 점자 표기가 없다는 지적을 했다. 함께 성장한 듯한 기분이 든다.
가족들에게 성산도서관을 둘러보기를 제안했을 때, 아들이 했던 말은 “엄마 그런데 허락받아야 하지 않아?”, “고소당하면 어떻게 해” 왜 고소당할 거냐고 물으니 “문제점을 비판할 텐데 그쪽에서 가만있겠어?”라고 했다. 이런 질문을 할 정도로 커가고 있는 건가? 언젠가 인권수업에서 어떤 아이가 다양한 성적 취향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답변이 위와 같은 걱정을 하는 아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 대신하고자 한다.
“동성애 등이 아직 사회적으로 갈등이 있고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도 싫어한다. 어떤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이 몰랐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우리 친구들에게 동성애에 대해서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인권침해라고 생각한다.”
성산도서관은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인권의 시각에서 본다면 적어도 변화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의 말처럼 “괜찮았어요”에 50%를 주고 “더 괜찮아졌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에 50%를 주고 싶다.
백선초(창원시 평화인권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