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의 현실
1.
산업재해란, 노동자가 일을 하던 중, 일과 관련된 사고로 사망 또는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을 말합니다. 산업재해는 산업의 발달에 따라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로 발생하며, 다수의 산업은 그 현장 자체가 이미 재해 발생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산업재해의 완전한 근절이란 이룰 수 없는 꿈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산업재해 현실은 이 꿈의 근처에도 오지 못합니다. 2021년 한 해만도828명이, 2022년 상반에만도 32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인해 사망하였습니다. 우리는 OECD 가입국 중 산업재해 사망자 관련 통계에 있어서 최상위권을 양보한 적이 단 한 번 도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의 근본 원인은 기업의 이윤추구 문화에 있습니다. 단기간의 고도성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업의 이윤 추구가 사실상 무제한 용인되면서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은 등한시되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 말하는 기적적인 경제 성장은, 사실 수많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갈아 넣은 결과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산업재해의 책임이 있는 기업과 경영자 등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지 못했습니다. 아니, 묻지 않았습니다. 상당수의 산업재해는 은폐되었고, 재해의 원인을 재해를 당한 노동자의 사소한 실수에서 찾아왔습니다.
비약적인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으나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고용 유연화를 위한 비정규직은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자리를 잡았습니다. 직접 고용과 이에 따른 법적 의무를 피하여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외주화 비율이 증가하였습니다. 특히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위협하는 위험한 작업을 열악한 지위에 있는 하청 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의 실태는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사태에서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이제는 심지어 위험 작업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전가 하면 된다는 후안무치한 발상까지도 발견됩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재해의 현실이며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2.
2016년 서울메트로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 고장 수리를 하던 19세 고 김모군이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변을 당하였습니다. 전형적인 민영화, 외주화로 인한 구조적, 체계적 원인 – 기업의 비용을 이유로 2인1조 근무 원칙을 지키지 아니한 것 – 에 의한 사고였습니다. 같은 사업장에서는 사고 4년 전, 3년 전, 9개월 전에도 동일한 유형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피재 노동자의 유족들에게 사고 발생의 원인은 고인에게 있다고 하였습니다.
2017년 노동절 거제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크레인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6명이 즉사하였고 25명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상자 전원은 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노동절이나 이들은 쉬지 못했고, 정규직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은 가운데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 발전소 소속 비정규직 김용균 씨가 석탄 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현장에서 즉사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시신은 사고 발생 후 5시간이 지나서야 경비원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이 또한 2인1조 원칙 등을 지키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한국 서부발전은 부서 평가 시 산업재해 사망자가 비정규직인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점수를 감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고들로 인해 산업재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증대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안타깝고 덧없는 죽음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경향신문은 전해 1월부터 당해 9 월까지 산업재해로 사망한 약 1,200명의 노동자의 이름을 빽빽이 채운 1면 전면 기사,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로 이러한 분위기를 대변하였습니다. 실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요컨대 중대재해처벌법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과 목숨이 모여 만들어 낸 것이었습니다. 정재계 일각에서는 이 법이 위헌이라거나 지나치다거나,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잘못된 법이라는 등의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법 시행 이후에도 산업재해가 큰 폭으로 감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더 이상 일터에서 죽지 않게 해 달라.’는 일견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바람이,셀 수 없이 많은 죽음과 죽음들로 절규가 되어 법으로 실현된 것입니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 문제의 해결을 초석이자 동시에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저지선과 같습니다.
3.
소설가 김훈씨는 산업재해에 관한 실태와 특히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죽음조차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나와 내 자식이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은 행운에 감사할 뿐, 인간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감수성을 상실해간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이와 같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김태형 변호사(창원시평화인권센터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