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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콘텐츠] 단편영화 '호루라기'

한지선 2022. 12. 6. 14:23

▲출처:세이브더칠드런 2022아동권리영화제 홈페이지

어제부터 매서운 추위가 갑자기 몰려왔다. 외부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현관문을 열고 집 거실에 들어설 때의 그 따뜻한 온기는 잠시 동안이나마 세상의 행복이 여기 다 모인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그렇다 늘 기거하는 집이지만 갑작스러운 추위에 감사와 고마움이 더 크게 전해졌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며칠 전 보았던 세이브더칠드런 2022아동권리영화제 우수작 호루라기'의 주인공, 고등학생 우재가 생각났다.

 

오늘같은 날 우재가 외투 모자를 뒤집어쓰고 차가운 손을 호~불며 집에 들어섰을 때의 상황과 느낌은 어땠을까? 불꺼진 싸늘한 공간, 내가 느낀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혼자서 라면이라도 끓여먹어야 할 상황이었을 테고 인터넷도 안돼서 SNS나 유튜브도 볼 수 없는 우재의 현실을 생각하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또한 아버지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불안감도 있었을 것 같다.

 

영화에서 우재는 고등학교 2학년이며 가정폭력으로 엄마는 집을 나가고 돌봐주시던 할머니도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게다가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하며 힘든 삶을 살아내고 있다.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으로 며칠 간 등교를 않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등교를 하는 반복이 고등학생 우재의 일상이다. 그런 우재에게 친구들은 아무도 곁을 주지 않고 거리를 둔다. 혼자인 우재는 친구관계에 마음의 문을 닫고 바깥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어폰을 낀 채 세상과의 소통을 차단하며 학교생활을 한다.

 

그런 우재가 간식 많이 준다는 단순한 홍보문구에 끌려 방송부에 들어가게 되면서 같은 부원인 소율이의 관심으로 우재는 이어폰을 빼고 세상과 소통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마저 얼마 가지 못했다. 소율이에게 “니 쯤은 다를 줄 알았다" 는 우재의 말이 너무 가슴 아프게 들렸다. 청소년들의 친구관계는 세상을 향한 소통창구다. 둘은 각각 다른 이유로 호루라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호루라기 소리를 통해 친구가 되는 듯했다.

 

우재와 소통하는 소율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의 시선에 소율도 마냥 자유로울 수 없는 청소년이다. 소율이의 마음을 눈치챈 우재는 소통의 문을 닫고 다시 이어폰을 낀 채 소외된 아이로 돌아간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상한 아이로 취급하는 차가운 시선, 이는 사회 성인뿐 아니라 학교 안에서도 여전함을 볼 수 있다. 구별짓기, 계층 나누기 등 차별적 언행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생애주기상 청소년기는 여러 가지 일들이 공존하는 시기로 혼란과 고통의 시기 기이기도 하지만 그 어느 시기보다 아름다운 희망을 꿈꾸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제일 중요한 존재는 누구일까? 물론,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이기에 부모도 중요한 대상이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대상은 친구다. 청소년에게 친구는 세상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의미 있는 중요한 존재다. 이 시기에 청소년은 학교나 밖에서 친구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많아져, 부모보다는 또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된다. 따라서 또래로부터 소외되고 거절되는 경험은 삶의 의지에 크게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단편영화 '호루라기'는 청소년이 감독하고 연출한 영화다. 선진국대열에 들어서 있는 나라라고 말하지만 아동인권 사각지대에 대한 대처와 방안의 미흡함을 청소년 목소리로 전해주고 있다. 사회 어느 곳에서도 아동이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지율이가 힘차게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의 진정성이 전해져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임지윤(창원시평화인권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