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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콘텐츠] 영화 '다음 소희'

한지선 2023. 12. 5. 11:29

 

'다음 소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현장실습 학생들의 실태에 관한 고발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소희의 자살에 대한 유진의 조사로 시작되지 않는다. 소희의 이야기로 시작해, 경찰 유진의 조사로 끝난다. 영화의 시작부터 소희의 일상을 따라가며 소희의 죽음과 사건 재조사 과정을 보며 가슴 아팠다. 소희를 둘러싼 상황들이 너무 답답하고 오랫동안 가슴 먹먹했다.

 

춤을 좋아하는 고등학생 소희는 나도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라며 좋아한다. 그러나 기대를 품고 출근한 콜센터는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진상 고객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듣는 게 일상. 소희는 그럼에도 열심히 일했다.성과를 내도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 현장실습의 실태와 차별적 대우, 거기다 같이 일하던 팀장의 죽음까지. 회사는 팀장의 자살을 덮고 각서에 서명을 해야 상여금을 지급하겠다고 협박성 제안을 해온다. 새로운 팀장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빨리 마음 추스르고 일을 하라고 재촉한다. 그러한 상황에 괴로워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장례식을 찾아가는 소희. 이 모든 것을 혼자 견뎌왔을 소희가 안타까웠다.

 

현장실습 결과가 학교에 미치는 영향과 교육청의 평가, 예산 책정, 후배들의 취업, 앞날의 무게까지. 소희를 둘러싼 어른들의 무관심과 현장실습 계약 상황들이 소희를 사지로 몰아세웠다. 소희의 죽음 앞에 누구 하나 잘못했다 하지 않고 현실이 그러느니, 어쩔 수 없다느니, 하는 소리 탓에 마음이 답답했다.

 

소희는 왜 죽음을 선택했는가. 살다 보면 해결책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때가 있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학교를 자퇴하는 것도 그때의 소희에겐 해결책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죽음만이, 현실을 그대로 두고 도망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희를 이 지경으로 내몬 것은 누구인가. 부당하게 노동착취를 한 회사? 그런 회사로 다시 내몬 학교? 소희의 힘듦을 외면하고 믿는다는 말로 갈무리한 부모님? 그 모든 것이 소희에겐 부담이고 아픔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다음 소희가 될 학생들이 아직도 많다는 점이다. 소희의 친구였던 태준에게 또 욱하는 상황이 생기면 자신에게라도 말하라는 경찰 유진의 말에 눈물을 흘렸다. 로봇처럼 취업률만을 읊는 학교 덕에 교육과정과 맞지도 않는 곳에 일하러 간 학생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중 어떤 학생이 다음 소희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현장실습생들의 부당한 처우와 안전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2011년 광주 한 공장에서 18세의 현장실습생이 도장 공정일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사고, 2014년 충북 진천소재 대기업 육가공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이 과중한 업무와 선임들의 괴롭힘으로,  2017년 전주 통신 콜센터에서 늦은 민원업무와 ‘욕받이’ 업무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2017년 제주도 생수공장에서 자동포장 적재기 장비사이에 끼어서 사망, 2018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의 실습생 사망도 있었다. 또한 2020년 현장실습 중 성추행, 폭행 등 이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고들이 있을 것이다.

 

소희는 모든 것을 지운 휴대폰에 춤을 추는 자신의 영상 하나만 남겨놓았다. 자신을 잃은 사람들에게 마지막만큼은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것일까.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던 소희가 아닌, 좋아하는 춤을 추던 소희의 모습으로 살아갔다면 어땠을까.

 

헌법 제32조 제3항에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와 5항에서는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현장실습현장에서 학생들의 노동 착취와 부당한 대우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도 실습생의 안전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이다.

 

이영숙(창원시평화인권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