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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돈을 주고 언어를 사야한다면

한지선 2023. 12. 5. 15:05

 

그림책 '낱말공장나라'를 인권의 눈으로 보다(글: 아네스 드 레스트라드, 그림: 발레리아 도감포)

돈을 주고 낱말을 사서 삼켜야지만 말할 수 있는 '낱말 공장 나라'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부로 말을 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가끔씩 바람을 타고 낱말이 떠다니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서둘러 곤충망을 들고 와 날아다니는 낱말을 잡았다. 오늘 가난한 '필레아스'는 곤충망으로 낱말 세 개를 잡았다. 내일은 '시벨'의 생일이고 오늘 곤충망으로 잡은 낱말 세 개를 선물할 거다. 그런데 필레아스가 시벨을 찾아갔을 때에는 부유한 '오스카'가 와있었다.

 

책은 첫 장부터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간섭하지 않으며 개인주의화 되어 가는 현재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거대한 자본 속에서 노동자들은 생산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간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은 너무도 단순하고 초라하게 표현되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을 만들어 내는데 정작 그 낱말을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은 낱말을 사기 힘들다. 노동의 가치가 자본의 가치에 눌려 힘을 잃었다. 입이 없는 모습에서 저항하지 않고 일만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쓰레기 통을 뒤지며 쓸데없는 낱말들이나 말찌꺼기를 줍는다. 열악한 환경은 그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어린 필레아스는 말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가난한 가정환경은 어린 필레아스가 직접 버려지는 낱말을 줍거나 날아다니는 낱말을 잡아야 하는 노동의 환경으로 내몰고 있다. 어린 필레아스가 노동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너를 사랑해라는 단어를 원하지만 현실은 체리, 먼지, 의자라는 단어를 얻을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으로서 소통해야 할 기본적인 조건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도 빈부격차는 아동을 노동현장에 내몰고 있으며 지식과 경험의 차이를 만든다. 이로 인한 불평등은 피레아스의 아버지에서 피레아스로 세습될 수 있다. 아이들의 노동은 교육의 기회를 뺏게 된다

 

오스카는 자본가의 아들이다. 오스카는 시벨에게 사랑 고백을 한다. 그러나 고백 과정에서 미소가 없다. 실패의 경험이 없는 오스카에게 미소라는 노력의 과정은 없어도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필레아스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단어를 다 써서 시벨에게 고백을 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체리, 먼지, 의자라고 한다. 동화 속 시벨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이라면 어떠했을까? 말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그림책에서 나는 마지막까지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그림책을 덮었다. 

 

 

백선초(창원시평화인권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