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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인권신문

[인권콘텐츠] 그린북이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며

by 한지선 2021. 10. 6.

영화<그린북> 포스터

20191월 겨울. 혼자 창동 씨네아트 리좀으로 향했다. 독립영화를 주로 다루는 영화관이었고 별 기대 없이 보러 갔지만 나는 소극장에서 감동의 눈물을 보였고 이 날 본 영화는 그해 내 최고의 영화가 되었다. 지금도 최고의 인권영화 하나를 꼽으라면 그린북이 떠오른다. 이 영화를 나는 작은 소극장에서 보았지만 그 해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까지 받게 되어 결코 작지 않은 영화로 기록되었다.

 

1962년 미국, 주먹만 믿고 살아가던 토니발레롱가는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의 운전기사로 취직하게 된다. 셜리는 미국 전역으로 초청받는 인정받은 피아니스트였지만 미국 남부는 당시 인종차별이 다른 곳보다 심한 위험한 곳이라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로 토니를 고용해야 했다. 그리고 셜리는 토니에게 그린북을 주며 그곳에 적힌 식당과 숙소만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린북. 그린(green)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지만 먼저 횡단보도에서 초록은 도로를 건너도 된다는 의미이다. 그린북에서 그린도 그 의미와 비슷하다. 이 책에 적혀있는 곳은 흑인이 이용해도 된다는 뜻이다. 실제 그린북은 아주 얇다. 그만큼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그린북에 쓰여있지 않은 모든 곳은 횡단보도의 빨간색과 같이 이용하면 위험하다. 다시 말해서 레드북을 만들었다면 엄청 두꺼웠을 거라는 얘기다. 너무 양이 많아서 당연히 못 만든다.

실제로 제작된 '그린북'

셜리 박사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식당에서 맞을때도 토니는 셜리 박사를 도와준다. 자신도 인종차별주의자였지만 셜리 박사와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리고 부당한 대우에 함께 분노하고 함께 거부한다. 영화에서 명장면을 꼽는다면 다음 공연장소로 이동하던 중 도로에 잠깐 쉬던 토니와 셜리 박사가 건너 농장 밭에서 일하던 흑인들과 눈이 마주치던 장면이다.

 

흑인들은 백인인 토니가 앞자리에서 운전을 하고 흑인인 셜리박사가 편하게 뒷자리에 앉은 모습을 마치 외계인을 보듯 쳐다본다. 불가능한 상황을 본 사람들 같았다. 토니와 박사도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렇다. 그들의 물리적 거리는 기껏해야 10미터 정도였지만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든 시간은 100년이 더 걸린 것이다. 역사적으로 백인은 흑인을 같은 인간으로 이해하고 문화적 거리를 좁히는 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고 아직도 나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그린북은 유효하다. 지구상 모든 곳이 그린월드가 되려면 우리는 우리 눈에 쓰여있는 색안경부터 벗어야 한다. 단연코 백인들만의 인종차별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우리보다 후진국의 사람들을 백인들 보다 무시하고 차별한다. 그들에게 한국은 그린월드가 아니다.

 

예를 들어, 국내 언론은 이번 미국 부통령에 당선된 인물을 보도하며 최초의 유색 부통령이라는 기사 제목을 썼다. 아무리 가져온 기사를 직역해 그대로 쓴다지만 누구를 기준으로 유색인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이 표현을 번역해 쓰고 싶었다면 비백인 부통령정도로 썼어야 했다. 기자들의 인권감수성이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영화 한 편 보고 사족이 너무 길어졌다. 그만큼 그린북은 나에게 깊게 머릿속에 남아 계속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계속 언급해야 할 영화이다. 지금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검둥이 주제에 아무거나 주는 대로 치면 되지.”

영화 <그린북> 대사 중

 

김민정(창원시 평화인권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