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게시판/인권신문

[인권콘텐츠]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by 한지선 2022. 6. 2.

▲세상을 바꾼 변호인 (2019, 미미레더 감독)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여성의 권리를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만들었던 위대한 인물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실제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성차별을 용인하는 법과 소수자를 향한 편견에 단호하게 반대하며 공정한 사회로 나가기 위한 토대를 만들었던 미국의 여성 대법관 긴즈버그는 연방대법원 대법관을 지냈다. 그녀가 직접 출연한 다큐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가 있고  2020년 가을 8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긴즈버그의 말>이라는 도서가 출간되었다.

 

 이 영화는 1950년 하버드대학 로스쿨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녀차별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태어난 긴즈버그는 전체 학생의 단 2%에 해당하는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며 수석으로 졸업하지만 그 어느 로펌에서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한 가지 사건을 접하게 된다.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며 살아왔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부양수당을 받지 못하는 미혼 남성이 긴즈버그에게 의뢰하러 온 것이다. 법적으로 부양수당을 받을 권리는 여자만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역으로 파고들며 긴즈버그는 이것이 다른 차별성을 띄는 조항들까지 바꿀 수 있는 역사적인 변호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미혼 남성은 부모를 간병하지만 간병비에 소득공제가 되지 않고 보험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 차별을 담고 있는 법 조항을 무력화시키는데 미혼남성에 대한 차별이 시작점을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져 있는 법 조항과 인식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에 익숙한 재판관들에게 논리를 토대로 공격해봐야 그들은 기존 관행과 가치로 방어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변론에서 긴즈버그는 차별의 폭력성을 이야기하며 재판관에게 질문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이다.

“100년 전이라면 전 판사님들 앞에 서지도 못했을 겁니다. 성별에 근거한 차별법이 178개 조항입니다. 선례를 뒤집자는 게 아니에요, 새로운 선례를 만들자는 거죠. 그 시작은 여기 있는 재판관님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

재판관이 반문한다.

여성이라는 단어는 미합중국 헌법에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

긴즈버그가 반박한다.

자유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라를 바꿔달란 말이 아닙니다. 그건 법정의 허락 없이 이미 시작됐으니까요. 이 나라가 바뀔 권리를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

 

 긴즈버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법으로 규정된 차별을 하나씩 바꾸어가자는 제안이다. 이 모든 차별을 하나씩 없애가면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긴즈버그의 발자국을 지나 여기까지 와 있다.

 긴즈버그가 살던 세상은 지금과는 달랐다. 여성은 신용카드를 남편 명의로 만들어야 하며 여성 경관은 뉴욕을 순찰할 수 없었다. 여성이 군용 수송기를 타는 것은 불법이며, 탄광에서 일할 수 없었다. 일리노이주에서는 여성은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없으며 남성들처럼 초과근무를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긴즈버그가 다니던 하버드 로스쿨에서는 여자화장실조차 없었다.

 그런 세상 속에 살면서도 그녀는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나가는 곳에 여지없이 함께 했다. 1996년 버지니아 군사학교에 여성입학을 허락하도록 했고 2015년 부담적정보험법, 50개 주 동성결혼 합법화라는 역사적 판결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녀는 영국매체 글래머지 ‘2012년 올해의 여성에 선정되었고 2015년 타임즈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이름을 올렸다.

 

 남녀평등과 인권 향상에 수많은 발자취를 남긴 그녀를 영화로 접하면서 과연 나는 현재 어떤 차별과 맞서면서 그녀의 뒤를 따르는 자취 한 조각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한다. 어떤 일이든 내가 하는 일이 유의미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오늘도 그녀가 남긴 당당한 여성이라는 화두를 늘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박서진(창원시 평화인권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