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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인권신문

“여기는 교통약자 권리석입니다.” 실현되는 세상을 꿈꾸며...

by 사자자리 2024. 7. 25.

 

 

내가 살고 있는 김해에는 경전철이 있다. 부산에서 강의를 하고 돌아오는 경전철을 탔는데, 퇴근시간이랑 맞물려 매우 혼잡한 상황이었다. 경전철에 오를 때 뇌병변장애인과 함께 탑승을 하여 혼잡한 사람 틈을 비집고 경전철 가장 안쪽에 서서 목적지까지 가고 있었다. 경전철의 흔들림이 심했다. 가장 안쪽이라 손잡이도 없었고, 장애인과 나는 서 있기가 쉽지 않았는데 뇌병변장애인은 중심잡기를 더욱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전철이 더욱 흔들리는 순간에 뇌병변장애인은 중심이 무너져 넘어질 지경이었지만, 아무도 그 장애인의 불편한 고통을 바라보지 못했다. 모두들 경전철안에서는 핸드폰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주의와 관심은 오직 스마트폰 세상에 집중으로 주변의 교통약자의 불편한 고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사람의 고통이 보이지 않나요?’라고 말이다. 하지만 경전철 안에서 나의 외침을 장애인이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사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다. 교통약자를 위한 배려석이 있지만 이곳은 필요한 순간에 다른 사람들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사회에서 만든 안전장치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교통약자 배려석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2조 제1항에 의하면 '교통약자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하고, 같은 법 제5조 제1항은 '교통사업자는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을 위하여 이 법에서 정하는 이동편의시설 설치기준을 준수하고 교통약자에 대한 서비스 개선을 위하여 지속해서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를 기반으로 마련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배려석이라고 명칭 하다보니, 배려를 주는 사람에게 우선권이 주어져 있어 교통약자들에게 권리는 수동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철저히 개인의 양심의 문제로만 여기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를 배려석이 아닌 권리석으로 바뀌게 되면 교통약자를 위한 좌석에 이들이 당연한 권리로 요구할 수도 있다. ktx열차는 예약된 좌석제이다. 타인이 그 자리에 않아있어도 비용을 지불한 좌석주인이 나타나 좌석을 본인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인권의 영역에서 평등한 사회를 성장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들의 배려, 시혜의 차원이 아닌 교통약자의 당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여기는 교통약자 권리석입니다라고 명칭과 담긴 의미가 변경되는 사회를 기대해본다.

 

 

 

이선희(창원시평화인권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