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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인권신문

사회적 약속이잖아요.

by 사자자리 2024. 12. 17.

 

 

 

  지난 1016일 김해문화축제를 갔다. 축제 행사장에는 곳곳에 부스 및 화장실이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잠시 둘러봤을 때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환경은 없었다. 축제를 즐기려 할 때, 비가 내렸다. 비도 피하고, 화장실도 갈 겸 김해박물관 화장실에 갔다. 줄이 제법 길었다. 여자화장실 줄만 긴걸 보니 여기도 오래전에 지어진 것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무기력하게 줄을 섰다. 진즉에 건물안에 자리 잡은 여자화장실은 정말 개선할 수는 없는 것일까?

 

길게 늘어선 한 줄과 그 옆에 빈 화장실 한 칸이 있었다. 화장실을 이용할 사람은 많은데 화장실 칸은 부족하고, 장애인 화장실은 비어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상황인가! 불편하고 번거로운 상황 중에도 우린 그 한칸을 비워놓고 긴 줄을 서고 있었다. 역시나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상황이라 인식한 한분이 출동하셨다. 내 앞에는 초등 고학년과 저학년 딸, 그 아이들의 엄마가 있었는데 뒤쪽에 줄서 있던 60대 후반에서 70대로 보이는 여자분(이후 할머니)이 그 딸과 엄마에게로 갔다. 그리고는 이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초등 여자아이 둘의 어깨를 두손으로 감싸며 너희 둘은 이(장애인 화장실) 화장실 이용해라고 말했다. 그 때 아이들의 엄마가 아니요, 안 들어 갈거에요라며 아이들을 감쌌다. 머쓱해 하는 여자분에게 그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장애인 화장실이잖아요. 이건 사회적 약속이잖아요”

 

바로 내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다니. 와우~ 너무 감격스러웠다. 이런 사람을 만나다니! 그녀로 인해 긴줄의 기다림속에서도 빈 장애인 화장실의 유혹을 떨칠 수 있었고, 지키는 것이 당연함을 알게 되었으며, 사회적 가치가 학습이 되었다. 어쩌면 유별나다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옛날 같으면 나이든 사람에게 무례하게 대한다고 여겨질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무례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무안해 하며 부끄러운 듯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학생들에게 약속을 어기는 것을 가르치는 어른이라니, 마땅히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맞는 말, 아주 상식적인 말에도 용기를 내야 하는 세상이 참 어이 없이 여겨진다. 가끔 아들들과 움직일 때 나 또한 맞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아들들이 만류하지만 난 이건 상식이야”, “됐어 엄마가 이겨이렇게 자기 체면을 걸고 웃으며 이야기하곤 했다. 오늘 만난 그녀 덕분에 조금더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게 너무 멋있게 보였고, 나도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모두가 멋있는 사람이 되었음 하는 바람도 살짝 해본다.

 

그녀의 말 속에서 너무도 익숙한 말 사회적 약속이라는 말이 명료하게 전달되었다. 직접적으로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수 있다니! 나도 일상의 대화에서 이런 상황이 온다면 명료하게 사회적 약속이라는 단어를 써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적 약속'. 우린 숱한 사회적 약속을 위해 개인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그런데 장애인 화장실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약속인데도 상황에 따라 어겨도 되는 약속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왜 일까? 어쩌면 비장애인이 상대적으로 다수이고, 다수가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다수가 수행이라는 양적 효율이 아니고 소외되거나 제외됨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질적 효율이 우선되는 것, 장애로 인한 핸디캡을 인정해주고 그것을 기본값으로 생각하고 기준이 되는 것이 합리적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화장실을 나온 후 주위를 보았다. '이 축제의 장은 모두에게 허락된 곳일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동형 화장실을 보았다. 이동형 화장실에 장애인은 없었다.  이해해 줘야 하는 것일까? 누구를?

 

 

 

 

백선초(창원시평화인권센터 활동가)